집필(執筆)/출판

어제저녁에 아이들 재워놓고 마누라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사진에 대한 책을 집필해서 출판하기로 했습니다. 그동안의 강의 경험을 바탕으로 초·중급 아마추어를 대상으로 하는 몇 권을 시리즈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마누라가 나의 귀차니즘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므로 일단 인터넷에서 퍼블리싱을 하되 게으름 안 피우고 잘하면 출판을 해준답니다.



삽질

이번 학기 중앙대학교 사진학과의 조명실기 수업에서는 00개의 과제를 부과하였습니다. 대부분 테스트 위주의 틀에 박힌 과제라 학생들도 뭔가 자유로운 과제를 갈망할 것 같았고, 전반적으로 낮은 평점 문제도 있고해서 기말에 2개의 자유작을 과제로 부과하였습니다.

수업이 끝나고 늘 그렇듯이 혹시나 역시나 분위기로 마지막 과제 검사가 마무리 될 무렵 한장의 ‘특이한’ 사진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사실 사진 자체는 특이할 게 없지만 전후 사정 얘기를 들어보면 제가 왜 특이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지 이해가 갈 것입니다.

보통 학기초에는 학생들이 의욕도 많고 약간 긴장하기 때문에 수강 인원이 많은 편입니다. 그러다가 2주정도 수업을 하면 과제가 부담이 되거나, 재미가 없거나 혹은 개인적인 사정 등의 이유로 수강을 철회하는 학생들이 생깁니다. 매번 다르지만 중앙대의 경우는 보통10% 정도이고 이번 학기에는 약 20%정도 된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중간고사 기간을 넘기고 기말로 가면서 몇명의 학생들은 아예 자포자기하는 상태로 수업에 나오지도 않고 과제도 내지 않습니다. 당당하게 F학점을 받겠다는 거지요.

수업이 거의 중반으로 향하던 무렵 한 학생의 출석 및 과제 제출 상태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자세한 것을 밝히기는 그렇고 그냥 속으로 ‘이 학생은 왜 철회를 하지 않는 것일까?’ 정도의 생각이 드는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출석부를 들여다보니 이 학생이 4학년 이더군요. (조명실기 수업은 2학년 수업이라 F학점을 받아도 보통은 나중에 재수강의 기회가 있지만 4학년이면 졸업을 못 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뭐, 자기 일이니까 알아서 잘 하겠지라고 생각하며 그냥 넘어갔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이 학생이 수업시간에 나타난 것입니다!

중앙대학교 사진학과에서의 수업에서는 나름대로의 규칙이 있고 이 규칙을 학기초에 학생들에게 단단히 숙지시킵니다. 규칙대로라면 이 학생은 학기 초반에 벌써 F학점이 확정된 상태였습니다. 출석을 부르다가 예하고 대답하는 소리에 벙찐 표정으로 몇초간 문제의 학생을 응시하다가 수업 끝나면 잠깐 보자고 얘기를 하고 그 날의 수업을 마쳤습니다.

당당한 표정의 이 학생이 수업이 끝나고 제게로 오더군요. 그래서 얘기를 시작했습니다.

학생은 어떻게 된거죠?
죄송합니다.
죄송이 아니라 이사람아 자네 4학년이던데 어떻할 거냐구요?
제가 시실은 ROTC라서 말입니다…
그거야 학생 사정이지. 학생은 벌써 F가 확정이라구.

자네 이 수업 F 받으면 졸업 못하는 건가?
예, 그렇습니다.
그럼 임관도 못 하는 건가?
예, 그렇습니다.

대화가 오가는 중에도 이 당돌한 학생은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출석 문제는 상황을 참작해서 그렇다고 치고, 과제는 어떻할겁니까?
다 하겠습니다.
정말? 그럼 빨리 다 해오세요. 과제는 예외 없으니깐 그동안 밀린 과제 빨리 다 해오세요. 안 해오면 나도 책임 못 지니까 나중에 원망하지 마슈. 나도 4학년 학생 F 주기는 싫지만 줘야 한다면 줄 겁니다.
예, 알겠습니다.

그 이후에도 이 학생을 학기 내내 종종 갈구어 주었습니다. 나쁘게 말하면 갈군 것이고 좋게 말하면 관심을 갖고 분위기를 상기시켰다고 하겠습니다.

그렇지만 밀린 과제를 몰아서 한다는 게 그리 쉽지는 않습니다. (제 입장에서 보기엔 물론 쉬운 거지만 매주 부과되는 과제를 매주 하는 학생들도 힘들다고 엄살을 부리는 걸 보면 밀린 걸 몰아서 하는 게 학생 입장에서 쉽지 않은 건 확실합니다.) 아니나 다를까 밀린 과제를 하기는 커녕 계속 부과되는 과제도 헤메더군요. 그러다가 어느덧 기말이 되고 이 학생도 다른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2개의 자유작을 제출했습니다.

자, 이제 사진을 공개합니다.

삽질

셀프를 찍어왔는데, 잠깐 보고 넘어갔다가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뭐야 이거?’

사진을 다시 뚫어지게 보았습니다.

‘삽질? 자기가 삽질하고 있다는 거야 아니면 내가 삽질을 한다는 거야?’

저는 사진이 표현하는 ‘이미지’를 중요시하지 사진이 내포한 ‘의미’에는 큰 관심을 갖지 않는 편입니다. 그런데 이번 학기 내내 야간 껄끄러웠던 이 학생과의 관계 때문인지 자꾸 무슨 특별한 의미가 있는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엥? 이게 뭐야? 지퍼가 열려있네? ‘ㅈ나게’ 삽질했다는 얘긴가?’

자세히 보면 군복 안에 사복을 입고 있습니다. 상의는 줄무늬가 있는 셔츠이고 하의는 정확히 보이지느 않지만 군복의 열린 지퍼(정확히 말하지면 버튼플라이) 사이로 군복 안에 입은 바지와 벨트의 반짝이는 버클이 보입니다.

과제 검사가 모두 끝난 후 한기중에 수고한 과대표(저는 반장이라고 부릅니다) 외 몇몇 학생들과 저녁을 먹는 자리에 이 학생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물어봤지요. 혹시 이 사진에 무슨 특별한 의미가 있냐구요. 없다더군요… 그냥 본인이 작업하는 모습을 촬영한 것이랍니다. Believe it or not…

같이 밥 먹으면서 군대 가서 고생할텐데 조심하라고 얘기했습니다. 나중에 또 보자구요.

한 학기가 끝나가면서 제 삽질도 거의 끝나가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