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새(火鳥)의 만행


이렇게 예쁜 우리 딸 이경이를…


불새님에게 짬시 맡겨놨더니…


이렇게 되었습니다.

물론 농담입니다.

작년 여름 불새님 다녀가신 직후 모기에 물려서 저렇게 된겁니다. 이경이는 모기에 굉장히 민감한 체질이라 한 방 물리면 거의 전치 6주쯤 되어 보입니다. 저 때는 거의 동시에 3방을 물렸었지요.

여름이 가고, 동생이 태어나고, 해가 바뀌어 다시 여름이 되어갈 때가 되어서야 네거티브를 현상했습니다. 시간이 많이 지난 뒤 보니 감회가 더 새롭네요…^^



동북아 3국의 역사분쟁 [퍼온글-저자미상]

최근 중국이 고구려사는 자신들의 역사라고 주장을 하고 나섰다. 이런 류의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한국인들은 일단 그들의 행위에 분노했고 해당국가에 대한 반감이 치솟았다. 일본과의 독도 영유권 분쟁 때도 교과서 왜곡 때도 그랬으며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했을 때도 그랬다. 하지만 일본과 중국을 욕하는 많은 사람들 중에 그들이 왜 그런 터무니 없어 보이는 주장을 하는지 또는 할 수 있는지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은 의외로 적다. 사안을 바로 보려면 먼저 원인부터 살펴보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먼저 이 원인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첫째, 역사에는 상당한 불확실성이 내포되어있다. 우리는 당장 그 가치를 판단하기 힘든 국가적 쟁점에 대해 ‘역사의 판단에 맡기자’는 말을 종종 한다. 이 말에는 역사의 판단은 항상 올바르며 객관적일 것이라는 믿음이 내포되어있다. 그러나 과연 역사적 판단은 옳기만 할까?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가 전부 진실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 우리가 배운 역사가 정말 진실이라면 우리가 믿는 역사에 대해 다른 나라에서 존재하는 이견은 모두 거짓인 것일까?
사가들은 사료연구와 문헌고증을 근거로 삼아 역사를 기술하고 판단하는데 사실 이것들은 크게 믿을 것이 못 된다. 사료라는 것은 언제나 소설적 상상력이 덧붙여지지 않으면 그냥 골동품일 뿐이고 고문헌은 신비주의와 쇼비니즘에 의해 끊임없이 덧칠되고 왜곡되어왔다. 그나마 고대로 가면 그 문헌도 거의 없다. 더군다나 권력자들은 자신의 권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관을 죽이고 자신을 영웅으로 정적은 역적으로 그린 역사서를 편찬하려는 무수한 노력을 해왔다. 다시 말해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에 상당한 거짓이 있을 것이라는 결론이 가능해진다.
그 예를 들어보겠다. 알에서 태어난 박혁거세의 일화나 천황이 신의 후손이라는 일본의 신화, 유태인 역사의 기적들을 역사적 사실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리고 이성계 가문을 우상화 하는 용비어천가와 신라의 정통성만을 강조한 삼국사기의 내용을 모두 신뢰할 수 없다. 또한 같은 시대적 사건을 서로 다르게 그린 고문헌들이 다수 존재한다는 것도 또 하나의 근거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부족한 사료와 불확실한 고문헌만 가지고는 역사 분쟁을 해결할 수 없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둘째, 3국은 지난 수천년간 농경민족으로써 한 뼘 땅에 부와 명예와 자부심을 이입해온 오랜 습관과 18대 조상을 들먹이며 행세하는 유교적인 인습을 공유하고 있다. 한민족은 항상 중국을 대국이라 칭하며 부러워했으며 고금을 통틀어 가장 자랑스러웠던 역사는 영토가 가장 넓었던 고구려의 정복의 역사이다. 일본 또한 기회가 있을 때 마다 대륙정복을 기도했으며 중국도 국력의 여유가 생기면 주변의 이민족들을 침략하였다.
또한 유교적 전통에 따라 잘난 조상을 둔 후손은 잘난 사람으로 대접받길 원했고, 조상이 경영했던 넓은 대지를 자신의 소유라고 생각하고 싶어했다. 한국인들 중 일부는 은연중에 조상들이 살았던 고조선과 고구려의 영토가 우리의 영토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중국인들도 당나라 때 점령했었던 티벳 지방을 자신의 영토라 여겼으며 이 생각을 실행에 옮겨 실제 침략했다.
땅에 대한 집착과 고토수복의 의지는 곧 전쟁의 욕망이자 명분이요 분쟁의 씨앗이다.

셋째, 여기서는 도덕성의 잣대 문제가 대두된다. 살인자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지탄을 받지만 수천 ∙ 수만의 살인과 약탈이 수반되는 정복은 분명 살인보다 더 부도덕한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정복이요 진출이다. 그리고 이 잣대는 정복을 당한 역사에 대해서는 반대로 적용된다. 이것은 집단의 도덕성이 개인의 도덕성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다는 니부어의 주장의 전형적 예이다.
자신들의 정복의 역사는 종종 ‘진출’이라는 어휘로 포장되고 타국의 침략의 역사는 ‘침략’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일본의 교과서가 한일합방을 일본의 ‘진출’이라고 표현해서 한국언론에게 크게 욕을 먹었지만 한국의 국사교과서에서도 광개토대왕의 북방정복은 ‘진출’, 침략한 지역은 ‘활동무대’라고 표현해왔다.

위의 세가지 문제의식을 가지고 동북아 3국의 역사적 분쟁을 하나씩 짚어보자.

1. 임나일본부설

임나일본부설은 1930년대 당시 동경대 교수였던 스에마쓰 야스가즈(末松保和)에 의해 처음 제기되었다. 내용은 일본이 4세기 후반에 한반도에 일본부를 설치하여 약 200년간 한반도 남부를 다스렸다는 내용이다.
한국에서 역사를 배운 사람들이 아는 상식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내용이며, 한국의 역사학계에선 이 설을 전면 부정해왔다. 한국인들은 고등학교 때 국사 선생님이 이 설에 대해 조목조목 비판을 해주셨던 기억을 공유하고 있다. 우리에겐 임나일본부설은 날조된 거짓학설이다.
그런데 좀 더 객관적인 시각에서 그 내용을 자세히 보게 되면 일본측이 설의 근거로 내세우는 고구려와 일본 송[宋]의 사료들이 생각보다 설득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오히려 이 근거들을 반박한 한국인들의 주장이 더 궁색해 보일 수 있다는 말이다. 적어도 임나일본부설은 일본 만이 아닌 3국의 문헌에 기초하고 있는 한국인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터무니 없는 주장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일본과 북한의 학계에서는 스에마쓰의 주장을 전부 인정하고 있지는 않지만 부분적으로 인정될 만한 여지가 있다고 여겨지고 있다.
그러면 왜 한국은 일리가 있는 임나일본부설을 전면 부정하고 있을까? 대답은 간단하다. 한국 사학계 전반에 뿌리내린 역(逆)신민사관 때문이다. 일제의 식민사관을 통해 폄훼된 한국의 역사를 바로잡아야 된다는 사관이 그것인데 아직까지도 그 잔재가 남아있는 식민사관의 잔재를 대부분 축출하고 한국의 주체적인 역사를 뿌리내리게 하는데 큰 공헌을 해왔지만 사관의 보수화로 올바른 역사적 판단을 하는 데에 있어서 방해물이 되기 시작했다.
앞서 이야기했듯 하나의 역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사학자들은 사료와 문헌들 속에서 다양한 시나리오를 만들어내고 가장 이견이 없고 타당한 시나리오를 정설로 하고 이를 역사교과서에 싣는다. 그리고 정설이 되지 못한 시나리오들은 하나의 설로써 사서에 담기고 학계는 이를 더 연구하게 된다. 임나일본부설은 누가 봐도 정설이라고 생각되기엔 그 근거가 빈약하지만 일설로써의 가치와 근거를 갖추었으며 전면부정하는 것은 한국인들로써도 떳떳하지 못한 것이다.
임나일본부설을 둘러싼 일본 역사가들의 행태가 옳다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임나일본부설이 일제의 한반도 침략의 명분으로 작용했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역사를 침략의 명분으로 이용하는 것은 그 자체로도 나쁜 것이며 과거에 점령했었던 땅이면 무조건 자신들의 영토라는 매우 유아적인 발상이다. 만일 그렇다고 한다면 한때나마 유라시아 대륙을 영토로 했던 몽고나 마케도니아, 거의 전 유럽을 석권했던 프랑스와 이탈리아가 영유권을 주장한다는 것이 정당하다는 것이 된다. 침략전쟁의 주구로 전락했던 일본의 역사가들은 반성해야 한다.
또한 일설에 불과한 임나일본부설이 교과서에 실리는 것 또한 문제이다. 교과서엔 역사적 정설이 담겨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한국인들도 일본의 천황이 백제의 후손이라는 주장을 한 적이 있으나 정설이 아닌 이상 교과서에 싣는 등의 몰상식한 행동을 하지는 않았다.
한국인들은 일본과 함께 임나일본부설에 대해 감정을 버리고 진지하게 그 가치를 따져 시비를 가려야 하며 일본도 어떠한 형태로 결론이 나기 전까지 교과서에 싣는 등의 추태는 보여선 안될 것이다.

2. 일본의 구석기 유물 날조

2000년 10월, 지난 20년간 수많은 구석기 유물을 발굴하며 명성을 쌓아온 후지무라 신이치가 가짜 구석기유물을 파묻는 장면이 마이니치신문의 기자에 의해 온 세상에 공개되었다. 이 사건으로 일본열도의 구석기문화가 존재한다는 모든 증거가 거짓으로 판명되었고 일본은 교과서까지 고치는 파란과 함께 국제적 망신을 톡톡히 다하게 되었다.
이 일대의 코메디는 중국과 한반도에 구석기 유적이 있다면 일본에도 있어야 한다는 단순한 바램에서 시작되었으며 개인의 명예욕과 일본 대중의 역사 열등감이 합쳐져 완성되었다. 이 사건은 일본의 역사왜곡의 의지를 세계적으로 알렸으며 이로 인해 그들의 역사에 관한 주장들의 신뢰성이 땅에 떨어졌고 일본은 역사학계의 양치기소년이 되었다.
비슷한 사건으로 북한의 단군릉이 있다. 고구려 장군의 무덤을 단군릉이라며 흥분한 북한의 학계가 사실확인의 과정을 생략하고 세계에 발표를 해버린 것이다. 하지만 없는 유물을 억지로 만들어서 발표하지는 않았고 그들 자신도 단군릉이었다고 믿고 있었다는데서 일본의 경우와 차이가 있다.
신원미상의 한 인물의 제보가 없었다면 일본의 역사는 영원히 조작된 체로 후세에 알려졌을 것이다. 학자과 대중들이 그릇된 역사인식을 갖고 있다면 역사는 얼마든지 조작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좋은 예이며, 왜 우리가 올바른 역사인식을 지녀야 하는지도 보여준다. 거짓된 역사는 역사가 아니고 후손에게 저지르는 범죄 그 자체이다.

3. 발해 과연 한국의 역사인가?

우리가 배운 발해는 7세기 말 고구려의 옛 땅에 고구려계 유민들이 주도하여 말갈인들과 함께 세운 나라로 알려져 있다. 우리는 당연히 고구려의 유민들이 고구려의 땅에 고구려의 문화와 복색을 갖춘 나라를 세웠으므로 우리의 역사에 편입시켰으나 중국은 발해를 거란과 월남 같은 중국의 변방 부속국가였다고 여기고 있으며 러시아는 말갈인들이 러시아계라고 주장하며 그들의 역사라 주장하고 있다.
우리는 당연히 발해는 우리의 역사라고 하고 싶겠지만 그렇지만은 않다. 발해는 알려져 있다시피 고구려 유민 – 지배계층, 말갈인 – 피지배계층으로 이루어진 복합민족국가다. 단순히 지배계층이 고구려 유민이었다고 해서 우리의 역사로 볼 순 없다. 고구려 유민은 소수였고 말갈인이 국가의 다수를 이루고 있었다. 또한 지배계층의 국가의 역사에 편입해야 한다는 논리라면 일제에 강점당했던 지난 30여년의 역사는 우리 민족 역사의 공백이 되는 셈이다.
말갈인은 북방유목민족으로써 한반도 국가들과 여러 갈래로 얽히어 영향을 주고 받은 민족이고 후에 여진족이 된다. 이 여진족은 중국의 절반을 점령하는 금나라를 세웠다 잠시 몽고에 멸망 당하지만 후에 청나라를 세우고 중국을 점령하여 중국에 편입되는 민족이다. 발해의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건 이 말갈족들이다. 따라서 역사의 주인공은 소수의 왕과 귀족이 아닌 절대 다수의 민중이라는 맑스주의적 역사관에 따르면 발해는 중국의 역사라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발해를 통치했던 건 분명 고구려 유민이며 이들은 고구려의 복식과 문화를 계승하였고 고구려의 후예라는 것을 자랑스러이 여겼다. 또한 발해의 백성의 다수를 다수를 차지하고 던 민족은 말갈족이였다. 따라서 발해는 고구려의 후예인 우리와 말갈의 후예라고 볼 수 있는 중국 공동의 역사인 것이다.
우리는 한 발해의 역사를 흑 – 백, 한 – 중 한나라에만 귀속시키려는 발상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발해와 같이 두 민족이 연합해서 만든 나라도 있는 것이다. 이런 나라의 역사를 자신들만의 역사라고 우기는 것은 옳은 태도가 아닐 것이다.

4. 종군위안부 그 책임은 누가 언제 어떻게 질 것인가?

식민지의 꽃다운 나이에 10대 여자들을 거짓 광고로 모집하거나 징발하여 군대의 위안부로 삼은 사상 유래 없는 일본의 파렴치 사건은 그 피해자가 아직도 살아있고 어떠한 형태로도 보상을 받지 않았다는 것 때문이라도 일본 정부와 한국 정부의 적극적인 청산의 의지가 필요한 사건이다.
먼저 법적 책임에 대해 살펴보자. 이 문제에 관해 가장 먼저 비난 받아야할 정부는 대한민국 정부이다. 박정희 독재정권 하에 1962년 한일기본조약의 체결로 헐값에 일제침략을 용서했으며 뒷돈까지 받았다. 이로써 일본은 침략의 법적 책임을 대부분 벗었다. 일제에 강제 징용되어 죽은 사람들의 목숨값을 포함해 피해자 개개인에게 돌아가야 할 보상금은 경제계발이라는 명목으로 돈 많은 기업가들과 공화당의 부정선거에 이용되었다. 따라서 우리 정부에서도 종군위안부에 대해 금전적인 형태이든 어떤 형태이든간에 책임을 져야한다.
다음은 도의적 책임에 관한 부분이다. 종전 후 60년의 시간이 흘렀고 그들의 조상이 저지른 범죄가 그대로 자식들에게 전가될 수는 없는 것이므로 일단 당장은 현재 일본국민들에 전쟁의 책임이 있다고 보긴 어렵다.
하지만 그들이 아직도 입헌군주제를 통해 전쟁의 주모자였던 일본 황실을 유지하고 있고 정치가들이 반성은 커녕 망언을 계속하고 있다. 또한 총리를 포함한 정치인들이 전범들을 신으로 모셔놓은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계속하고 있다는 것은 자신들이 전범의 정통성을 잇고 있다는 것을 자인하는 것이다. 침략의 역사를 그리워하고 후안무치한 정치인들이 계속 선거에서 당선되는 한 일본 국민들에게도 도의적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일본엔 일제가 있었기에 한반도는 많은 발전을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이 있는 것 같은 데 경제발전이 지상목표인 보수 우익 특유의 말도 왼되는 논리이다. 이것은 길가는 아이에게 억지로 만원 쥐어주고 죽도록 패고 나서 자긴 잘못 한 것 없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은 억지이다.

5. 독도는 우리땅과 동해 – 일본해 문제

‘울릉도 동남쪽 뱃길따라 이백리…’ 오죽하면 이런 노래까지 나왔을까? 일본은 100년이 넘게 한국의 독도를 호시탐탐 노려왔다. 이제는 포기할 때도 됐건만 아직도 심심치않게 나오는 다케시마 운운하는 정치인들의 망언을 듣노라면 그들의 땅 욕심은 정말 집요하고 대단하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독도는 적어도 1500년 이상 한국의 영토였고, 독도 영유권에 대한 한국국민의 의식과 의지는 대단하다. 일본이 독도 영유권에 대해 주장하고 있는 명분은 조선의 공도정책과 2차대전 후 연합국의 대일본 강화조약의 권리포기도서 리스트에 독도가 빠져있다는 것 등인데 공도정책은 잦은 왜구침탈에 주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세운 정책이었으며, 이후 연합국 사령부가 독도는 한국의 영토라는 사실을 천명한 바가 있으므로 이는 명분으로써의 구실이 되지 못한다. 법적 근거와 명분을 떠나서 35년간 수탈했던 국가의 영토의 영유권을 주장한다는 사실만으로 일본의 침략행위에 대한 반성의지 결여와 파렴치함을 알 수 있다.
일본이 독도의 영유권을 자꾸 주장하는 거시적인 이유는 동해에 대한 권리 확보를 위함이다. 동해와 일본해는 둘 다 양국의 자국중심적 명칭인데 동해의 막대한 수산자원에 대한 권리주장 때문에라도 이 명칭이 갖고 있는 의미는 매우 크다. 그런데 독도가 한국의 영토가 되면 베타적 경제수역의 범위가 그들이 일본해라고 부르는 해역의 대부분을 포괄하게 되므로 일본해라고 부를 수 있는 명분이 약해진다.
또 다른 이유는 당장의 실리 확보 때문이다. 한국의 일본에 대한 무역의존도가 매우 높은 상황에서 일본은 한국에 여러 형태로 경제적 압력을 넣을 수 있는 국력을 확보한 셈이다. 일본은 한 ∙ 일간의 무역이나 외교상의 마찰이 생겼을 때 전가의 보도처럼 독도 영유권을 주장했고 이에 흥분한 한국인들은 늘 하던 것처럼 일본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하고 일장기를 불태우며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것을 일본에 확실히 해줄 것을 정부에 요구해왔다. 힘없는 정부는 일본과의 무역과 외교에서의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일본의 독도’라는 명분에 대한 손바닥만큼의 양보를 받아내며 물밑에서 일본이 요구하는 경제, 외교적 사안을 들어주었다.
독도에 대한 일본의 입장은 독도는 언제나 일본에게 이익을 가져다 주는 화수분 같은 존재이며 어차피 독도는 한국의 것이기 때문에 영유권 분쟁이라는 것은 일본으로는 잃을 것이 전혀 없는 남는 장사이다.
독도분쟁은 일본 정치인의 말 한마디에 부화뇌동하여 감정적인 대처를 하는 것으로 절대 해결할 수 없다. 분쟁에 따른 손해를 막는 가장 빠른 길은 당장의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권리를 확실하고 냉정하게 주장해야 하며 양국간에서 타협을 하기보다는 국제사회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국제사회에 국제사회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는 독도는 한국의 것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학문적 연구, 적극적인 홍보 그리고 국제사회에서 신뢰 형성이 필요하다.
국제사회 안에서 신뢰를 형성하는 길은 우리의 역사연구가 객관성을 지향하고 국수주의적 왜곡을 지양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따라서 앞서 말했듯이 역사를 균형된 시각으로 보며 진실을 지향하는 연구를 하여야 한다. 일본의 구석기 유물 날조 같은 추잡한 행태를 보인다면 우리는 독도를 절대 되찾을 수 없다.

6.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인정하기 싫지만 조선시대의 한반도는 실질적인 중화의 제후국이었다. 주기적으로 공물을 바쳤으며 왕위등극 시에 형식적으로나마 그들의 허락을 받았다. 하지만 그러한 과정을 통해 압도적 힘을 가진 중국과 병존하며 우리 민족과 문화를 지켜왔다. 이것은 결코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고구려 역사를 중국의 역사라 주장하는 것은 명백한 왜곡이다. 그들이 주장하는 바는 고구려의 옛 땅이 현재의 중국영토라는 것이고 이를 근거로 하여 왜곡을 계속 해왔다. 이는 그들이 그동안 줄곧 주장해왔던 민중, 민족 중심의 맑스주의 역사관을 스스로 배척한 것이다.
고구려는 항화의 기치를 내걸고 역사상 가장 치열하게 중화에 투쟁했던 나라이다. 만일 다른 나라가 다 중국의 역사라고 치더라도 적어도 고구려는 중국의 역사라고 주장할 수 없다.
그들이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것은 아니나 이런 터무니 없는 주장을 하는 속내 뒤로 캥기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간도 영유권에 관한 것으로 간도는 아다시피 일제 강점하에 일본이 멋대로 중국에 양도한 땅이다. 중국이 간도에 대해 더 떳떳하지 못한 이유는 그들이 미국을 통해 조어도를 빼앗긴 과정과 간도를 중국이 양도 받은 과정이 매우 흡사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조어도에 대해 중국은 강력히 권리를 주장해왔고 간도도 중국의 땅이라고 주장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따라서 언젠가 통일 전후해서 제기될지 모르는 간도에 대한 우리의 권리요청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의도를 가진 것이고 이는 반쯤 성공한 듯이 보인다. 언제나 타국의 이런 식의 왜곡에 대해 국민들은 흥분해서 우리 정부에 어떠한 형태로든 사과를 받아내길 요구하고 방금 전까지 억지를 부리던 나라는 슬그머니 사과를 빙자한 타협을 통해 실리를 챙긴다.
중국의 왜곡이 어디까지 갈지는 알 수 없으나 한번 그 속내를 드러낸 만큼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차분하고 이성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우리가 취해야 할 자세일 것이다.


놀랍게도 정치적으로 진보적 성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역사문제에 있어 상당히 보수적이다. 이들은 과거 고조선이나 고구려의 대제국을 그리워하며 우리 민족의 역사적 주체성을 찾자고 주장한다. 그렇다고 정치적 보수이념을 띈 사람들이 균형된 역사관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아직도 한단고기 운운하며 역사를 소설로 둔갑시키려는 무리들이 한국사학계에 소수나마 존재한다. 자국의 역사를 진실의 눈으로 보려는 세력이 많지 않다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는 역사적 주체성이 넓은 땅과 침략의 역사에서 오는 것이 아님을 다시 한번 상기해야 할 것이다. 21세기는 더 이상 농경사회가 아니며 몇 만평의 땅보다 지식과 기술, 인재가 국력을 좌우하는 시대이다. 이러한 시대에 과거 역사를 들먹이며 영토분쟁이나 일으키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행위이다.
3국의 역사분쟁 해결의 키는 역사적 정통성이나 정치인들의 양심보다 각국의 힘과 국민들의 여론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야스쿠니신사참배가 정치인 개인의 의지보다 일제 침략의 역사를 자부심으로 만들고 싶은 국민들의 여론에 의함이라는 것에 주목해야한다. 정치인의 의식변화를 기대하고 우리의 역사적 정통성을 주장하며 막무가내로 주장만 하기보다 3국의 국민들이 스스로 역사적 인식을 변화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가난하고 핍박 받던 조상들의 삶은 부끄러워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그들은 그들의 시대를 최선을 다해 살았고 적어도 도덕적인 면에선 우위에 서있었다.
거짓으로 점철된 침략과 정복의 역사는 자랑스러워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거짓된 역사기술은 식민사관보다 더 위험한 것이며 우리의 주장의 떳떳함과 진실성을 떨어뜨릴 것이다. 이런 우를 자주 범하는 일본의 보수 사학계는 신뢰를 모두 잃었다.
역사는 수단도 목적도 아닌 그 자체이다. 역사를 통해서 얻을 것은 자부심이 아닌 과거에 대한 반성과 미래의 비젼이다. 당장의 이익과 헛된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역사를 왜곡하고 진실을 감춘다면 후손들에게 큰 죄를 짓는 것이다. 한중일 삼국의 정치인, 역사가는 물론 누구보다 각국의 민중들이 이를 깊게 새겨야 할 것이다.

생각하는 ㄱㄴㄷ

생각하는 ㄱㄴㄷ

이지원 기획/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그림 | 논장 | 2005년 04월

우리 아이 한글공부,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좋을까. 쉽고 재미있게 익히는 방법이 없을까. ‘생각하는 ㄱㄴㄷ’과 ‘개구쟁이 ㄱㄴㄷ’은 이런 고민을 하는 부모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글자그림책이다. 한글 닿소리 14자와 그 소리를 담은 다양한 낱말들을 그림으로 풀어놓았는데, 어찌나 기발하고 재미있는지 아이들의 생각주머니 키우는데도 도움이 될 듯 싶다. (한국일보 기사 중에서…)

‘생각하는 ㄱㄴㄷ’은 여느 글자그림책처럼 사물을 그저 그려놓은 게 아니라, 사물의 이름에 들어가는 닿소리 모양대로 그려 “와!”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자신의 책 출간에 맞춰 방한했다가 한글 자모의 간결한 논리성에 매료돼 작업에 참여했다는 폴란드의 저명한 일러스트레이터 이보나 흐리엘레프스카의 그림은 외국인의 솜씨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한글 자체가 지닌 아름다움을 놀라운 상상력으로 변주해 보여주고 있다.

책의 구성도 매우 독특하다. 왼쪽 페이지에는 해당 닿소리가 들어가는 낱말을 활용한 큰 그림이 차지하고, 오른쪽 페이지는 9개 칸으로 분할해 8개의 낱말 그림을 배치하고 가운데 칸은 그 닿소리가 들어가는 색깔을 담았다.
‘ㅂ’ 항목을 보자. 큰 그림은 누군가 수돗물을 틀어놓고 비누로 손을 씻는 모습을 ‘ㅂ’ 모양으로 형상화했다. 오른쪽 페이지에는 두 마리의 ‘뱀’이 서로 몸을 꼬고 있거나, 결혼식장에서 ‘반지’를 주고받는 신랑ㆍ신부, ‘바람’에 흔들리는 두 그루의 나무, ‘빗’질하는 여자아이의 모습 따위가 그려져 있다.

아이들에게 그림을 보여주고 “○○야, 이 그림 속에는 어떤 낱말이 숨어있을까” 하고 묻는 식으로 읽어나가는 것이 좋다. 책을 다 뗐다면, 아이들이 스스로 그 닿소리가 들어가는 다양한 낱말들을 찾아 그림으로 그려 보게 하는 것이 어떨까.